유럽을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도시를 본다는 것을 넘어, 전혀 다른 삶의 속도와 문화를 경험하는 일이다. 특히 서유럽은 고대와 현대가 섞여 있는 지역으로, 여행자에게 상반된 인상을 동시에 남긴다. 성당과 광장, 미술관이 있는 오래된 도시가 있는가 하면, 자유롭고 예술적인 감각이 살아 숨 쉬는 현대적인 도시도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한 번 서유럽에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나는 지난 12년간 혼자 배낭을 메고 서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여행했다. 유스호스텔에서 수십 명의 여행자들과 부대끼며 지낸 적도 있고, 도시 외곽의 공원에서 노트북 하나만 들고 조용히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런 여행을 반복하다 보니, 여행자의 시선에서 진짜 ‘가볼 만한 도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글에서 소개할 도시들은 관광책자에 나오는 단순한 핫플레이스가 아니다. 2025년 현재, 진짜 여행자들이 찾는 서유럽의 인기 도시들이다. 풍경이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는 건 기본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혼자 걷는 여행자에게도 편안함과 영감을 주는 도시라는 것이다.
1. 리스본, 포르투갈 — 서유럽의 끝, 그러나 여행의 시작점
포르투갈은 오래전부터 여행자들 사이에선 ‘숨겨진 보석’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보석이 세상에 완전히 드러났다. 특히 리스본은 더 이상 숨겨진 도시가 아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 도시만의 햇살이다. 남부 유럽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은 어느 순간에도 여유를 선물한다. 옅은 노란빛 건물들 사이로 오가는 트램, 알파마 지구의 울퉁불퉁한 돌길, 그리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타구스 강. 이 모든 풍경이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장면처럼 다가온다.
리스본은 배낭여행자에게 특히 이상적이다. 첫째, 물가가 합리적이다. 유럽 주요 수도 중 숙박비와 식비가 가장 저렴한 편이며, 로컬 식당에서는 10유로 내외로 퀄리티 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둘째, 혼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카페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그냥 앉아 해를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혼자’다. 그래서 혼자임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리스본에서 일주일간 머무르며 하루도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매일 새로운 골목을 만났고, 매일 새로운 햇살을 느꼈다. 사람들은 다정했지만, 거리를 둘 줄 알았고, 도시 전체가 ‘너는 네 방식대로 여기 있어도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따뜻한 거리의 공기가 나를 많이 위로해주었다.
2. 바르셀로나, 스페인 — 색채와 감정이 춤추는 도시
처음 바르셀로나를 찾았을 땐 솔직히 기대가 크지 않았다. 너무 관광지스러울까 봐, 진짜 도시의 숨결을 느끼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바르셀로나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다. 거리마다 다른 음악이 흐르고, 벽면에는 감각적인 그래피티가 가득하며,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선 저녁이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도시는 예술을 전시하지 않고, 그냥 ‘살고’ 있다.
가우디의 유산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의 성격을 결정짓는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 앉아 있으면, 종교적인 감동이 아니라 어떤 창의성의 압도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구엘공원, 바트요 하우스, 카사 밀라—all 사람의 상상력이 현실에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소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좋은 이유는 ‘볼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 여행자를 위한 도시로서의 매력이 크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가 넘쳐나고,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며,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누구든 쉽게 섞일 수 있다. 다만 치안에는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람블라스 거리와 지하철 안에서는 소매치기가 빈번하니, 가방은 꼭 앞으로 메고 다니자.
개인적으로,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새벽이 가장 좋았다. 사람들이 없을 때 해변을 걸으면 바다 소리와 도시의 고요가 함께 스며들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낮엔 복잡하지만, 그만큼 밤이 아름다운 도시다.
3.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 질서 속의 자유
암스테르담은 늘 흥미로운 도시다. 겉보기엔 자유롭고 유쾌한 도시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질서 있고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그것이 이 도시의 매력이다. 혼자 떠난 배낭여행자에겐 그런 ‘균형’이 무척 중요하다.
처음 이 도시를 찾은 날, 나는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20분 만에 시내에 도착했다. 도시 구조는 단순하지만 매력적이고,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거리 풍경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어 있어 혼자서도 안전하게 도시를 둘러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 시티카드를 구매하면 박물관, 대중교통, 운하 크루즈까지 포함되니 여행이 한결 편해진다.
암스테르담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도시’다. 반고흐 미술관이나 국립미술관에서 몇 시간씩 머물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도서관이나 작은 북카페에 앉아 있어도 누군가 말을 거는 일은 없다.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처음으로 ‘여행 중에도 일상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비 오는 날, 운하 옆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순간들이 이 도시에 숨어 있다.
결론: 도시는 경험보다 감정을 남긴다
좋은 여행지는 꼭 볼거리가 많은 도시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곳에서 어떤 감정을 남기고 돌아왔는가다. 리스본은 따뜻함을, 바르셀로나는 에너지를, 암스테르담은 고요함을 선물해주었다.
서유럽을 배낭여행할 계획이라면, 이 세 도시를 루트에 넣는 것을 망설이지 말길 바란다. 너무 유명하다고, 너무 관광지 같다고 미루지 말고, 오히려 그런 도시가 주는 이유 있는 인기를 경험해보길 바란다. 혼자 떠난 여행이 진짜 의미 있으려면, 결국 내가 어떤 도시와 연결되었는지가 중요하다. 그 연결이 오래 남을 도시들, 바로 여기에 있다.